동남아인들 집창촌 접수? 그들 잡아야 ‘입에 풀칠’
많이 사그라들긴 했지만
현재도 집창촌이 존재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 불이 꺼져 있긴 하지만 간간이 불빛을 밝히고 아가씨가 손님을 맞는 곳도 여전히
있다. 하지만 이제 이곳은 더 이상 ‘한국인들을 위한 집창촌’은 아니다. 이곳을 찾는 상당수의 남성들이 다름 아닌 외국인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쇼셜커머스NO.1사이트' 헤이맨라이프(www.heymanlife.com)의 협조를 받아 취재했다.
한
국인들은 입소문이나 인터넷 정보에 밝기 때문에 집창촌을 직접 찾아가는 위험한 성매매는 거의 하지 않는다. 대신에 비교적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는 오피스텔 성매매, 키스방 등 신종 성매매업소 등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남아인들은 다르다. 성매매 유흥업소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선 집창촌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
사실 집창촌이
한창 호황일 때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얼씬도 못했다. 집창촌 아가씨들도 일종의 ‘인종차별’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동남아인들마저 없으면 남아있는 아가씨들의 생계가 막막하기 때문이다. 한 집창촌 관계자는 “이곳에 오는 남성들의
50% 이상이 동남아인이다. 결국 우리 수입의 절반 이상을 이들이 책임져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예전에는 그들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제는 친절하게 대해주고 일부와는 ‘단골’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상황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것.
그러나 보니 한국인들은 더욱 이곳을 기피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동남아인들이 가는 성매매촌에
가고 싶지 않다’는 인종차별적인 시각이 그 이유다. 이곳을 찾던 많은 한국 남성들은 성매매특별법 이후 집창촌 대신 회사 근처의
깨끗하고 편리한(?) 성매매업소들을 찾아가는 것이 현실. 이러한 소비자(?)들의 구미에 맞게 도심 곳곳엔 변종 성매매업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집창촌을 찾아 동정을 바쳤다는 류의 첫 경험담은 이제는 유흥가에서도 듣기 힘든 옛노래가 돼버렸다.
헤이맨뉴스 (www.heymannews.com)
기사 쓴 놈 뇌구조를 알수있군요. 맨 마지막 부분, 한국인들이 더욱 그곳을 기피하는 현상이 벌어졌는데 그 이유가 인종차별적인 시각? 참 구역질 날 정도로 가지가지 한다. 어차피 불법인거고 그곳은 그냥 너무 더럽게 보이고, 검증도 안된 동남아 애들이 물밀처럼 드나드니 무슨 더러운 병에 걸릴지도 모르는거고 쪽팔려서라도 못가겠구나 하고 생각을 해야하는거지. 자유의지로 자기 돈 쓰는 건데 특정 창녀촌을 한국남자들이 기피하는 걸 인종차별과 결부를 시키다니 참 한심스런 놈이다.내생각엔 거긴 포주부터 매국노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그리고 그쪽 창녀들은 따로 구분해서 관리를 해야 합니다.
동남아 서남아 베트남 짱께 다 있겠지요 물론 그들모두 정리해야할 종자들이구요 그리고 내국인 7만원 외국인 3~4만원 이거뭔가요? 더 싸게해줘도 안갈판인데
참 어처구니가 없네요 아니뭐 그런법도가 다있나요??? 불쌍해서 싸게 해준다 뭐 그런주의인가?? 염병을 하고있네 그리고 몇년전에 여자 서장이었나요 뭐 성매매
와의 전쟁이다해서 난리드립치더니 정권바뀌고 뭐 이래저래 대충 넘어갔나봐요 이런건 봐주는거 보니까??? 이 나라 이거 제정신으로 돌아가는거 맞습니까???
북에서는 미사일 쏴대고 안에서는 불체자들이 지랄발광이고 할일 드럽게 많다 대한민국
2010년 11월 8일 월요일
2010년 11월 1일 월요일
베트남 신생아 한국인 만들기
베트남 불법체류자가 낳은 아이가 노숙자의 호적에 올라 한국 국적을 취득한 후에
베트남으로 보내지고 있다네요.
부모 모두 베트남 불법체류자로서 한국과 아무 관련이 없음에도 한국 국적이므로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 한국으로 돌아오면 교육과 취업이 가능한 한국인이지요.
그런데 결론이 또 웃기네요.
한국인이 된 신생아들이 15일짜리 관광비자로 베트남에 입국했으므로
그 아이들이 베트남에서 불법체류자가 될 것을 걱정하고 있으니...
브로커들 잡아들였으면 불법체류자 부모도 밝혀낼 수 있을 것이고
그럼 해당되는 처벌하고 추방하면 되지 않나요.
아이의 국적도 베트남으로 회복시키고요.
베트남으로 보내지고 있다네요.
부모 모두 베트남 불법체류자로서 한국과 아무 관련이 없음에도 한국 국적이므로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 한국으로 돌아오면 교육과 취업이 가능한 한국인이지요.
그런데 결론이 또 웃기네요.
한국인이 된 신생아들이 15일짜리 관광비자로 베트남에 입국했으므로
그 아이들이 베트남에서 불법체류자가 될 것을 걱정하고 있으니...
브로커들 잡아들였으면 불법체류자 부모도 밝혀낼 수 있을 것이고
그럼 해당되는 처벌하고 추방하면 되지 않나요.
아이의 국적도 베트남으로 회복시키고요.
2010년 10월 25일 월요일
[Why?의 추적] "필리핀 구치소에서 5년… 동물처럼 맞을 때 조국은 뭘 했나"
출처: 외국인노동자대책시민연대
필리핀 가정부 살인사건 범인 몰린 조광현씨 보석
해외 자국민 부당 대우 받아도 정부, 개인사건에는 개입 안해
외교부 "온두라스 한지수씨는 국민 관심 고려… 특이한 경우"
8 일 한 명의 한국인이 타지(他地)에서 구치소 문을 열고 나왔다. 이름은 조광현(35·사진). 2005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발생한 '필리핀 가정부 총격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뒤 미결수(未決囚) 신분으로 마닐라 구치소에 약 5년간 있었다. 조광현은 처음부터 자신은 필리핀 가정부를 살인하지도 않고, 물건을 훔치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영어가 서툰 그의 말을 귀담아들으려는 사람은 없었다. 조광현의 고용주였던 진모씨가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고, 조광현과 비슷한 차림새의 사람을 범행 현장에서 목격했다는 사람도 나타났다.
그런 그가 지난 8일 보석금 60만 페소(약 1550만원)를 내고 석방됐다. 필리핀에서 강도·살인 용의자가 보석금을 내고 석방된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보 석금을 대신 내주는 등 석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구정서(33·필리핀 회사원)씨는 20일 기자와 서울에서 만나 "검찰이 범행을 입증할 만한 증거자료를 내놓지 못했다"고 말했다. 범행에 사용된 총도 찾지 못했고, 현장에서 발견됐다던 총알도 '발사된 적 없는 총알'로 밝혀졌다. 경찰이 '조광현의 강도·살인의 증거'라며 보관 중이던 진씨의 귀금속도 재판 기간 중 쥐도 새도 모르게 분실됐다. 구씨는 "조광현이 구치소에 있는 동안 고용주 진씨는 사업이 망해 2006년 야반도주(夜半逃走)해서 한국으로 돌아갔다. 조광현이 필리핀에 와서 진씨에게 8000만원을 투자했는데 결국 그 돈을 받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18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조광현은 "감옥에서 동물 같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국가가 도와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 11월 25일 처음 체포됐을 때를 기억한다. "공항에서 경찰에게 붙잡혀 경찰서로 간 다음, 한 건물로 옮겨져 권총 손잡이와 길이 1m의 각목으로 맞았다. 얼굴은 멍들고 피투성이가 됐다. 그날 경찰서 서장실에서 한국 대사관에서 왔다는 영사를 만났다. 내 얼굴을 보더니 '얘네한테 맞았냐?'고 물었다. '얼굴 보면 모르냐'고 답했더니 '알겠다'라고 대답하고 돌아갔다. 그 뒤로 아무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대사관에서는 1년에 두 번, 구정과 추석 때 면회를 하고 생필품을 주거나 어려운 점을 물었다. 그러나 바뀌는 것은 없었다. 조광현은 "국가에서 재판에 관여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자국민이 부당하게 폭행을 당하지 않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 재외국민보호과 여창훈 서기관은 처음엔 "필리핀에서 특별한 사항이 보고되지 않았다"고 하다 "주필리핀 대사관에서 보내온 전문을 보면 경찰영사가 조광현씨를 11차례 면담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애로사항이 없다'고만 적혀 있다"고 말했다. 즉, 조광현이 필리핀 경찰에게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을 봤다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조광현이 만났다는 당시 경찰영사 박모(현재 국내 경찰 근무)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때 서장실에서 조씨를 만났지만 외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뒤로 한 번 더 면회를 갔는데 오히려 조광현이 면회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외교부가 살인 혐의로 온두라스에서 가택연금 중이던 한지수(27) 사건에 긴급대응팀을 보낸 것과 비교하면 대응방식에서 큰 차이가 느껴진다.
외 교통상부는 "한지수 사건이 특이한 경우일 뿐 원래는 개인 사건에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양제훈 서기관은 "개인사건에 국가가 지원한 사례는 유례가 없고, 한지수 사건의 경우 '국민 관심 때문에 (긴급대응팀을) 보낸 것 아니냐'는 말을 들어도 솔직히 할 말은 없다"고 답했다. 양 서기관은 또 "피해자의 국가인 네덜란드 정부가 나서려는 움직임이 있어서 대응 차원에서 개입한 것도 있다"고 밝혔다. 한국외대 서경교 교수(정치외교)는 "법적인 판단은 당연히 해당 국가 재판부가 하는 것이지만, 정부는 자국민이 해외에서 공정하게 재판을 받도록 노력해야 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보호해야 할 책임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조광현은 아직 재판이 끝나지 않아 필리핀에 머물러 있다. 내년 1월 초 최종 선고가 내려지는데 "무죄 판결을 받으면 한국으로 바로 돌아와 터를 잡겠다"고 했다. 필리핀인 아내(사실혼관계)와 아들을 데려와 함께 살 생각이다.
조광현 사건은?
조 광현은 1997년 프랑스 외인부대에 들어갔다가 2005년 중사로 전역했다. 한국에 돌아와 잠시 시간을 보내고, 2005년 8월 필리핀에 있는 한인 카지노 사장의 보디가드로 고용됐다. 3개월 후인, 11월 25일 새벽 5시쯤 사장 집에서 일하던 필리핀 가정부가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그는 용의자로 지목됐다. 그 후 4년10개월간 마닐라 구치소에서 미결수 신분으로 50차례 이상 재판을 받았고 지난 8일 보석금을 내고 나왔다. 내년 1월 27일 마지막 재판을 앞두고 있는 그는, 그전까지 필리핀 검찰이 추가증거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무죄 선고를 받게 된다
필리핀경우 외국인에게 시민권절대없습니다. 자국민과 결혼한 경우에도 시민권 이라는건 없습니다
근데 뭐말라비틀어졌다고 필리핀 이민자에게 시민권 남발하는지.... 대가리에 오물만가득찬개들이 마치제것인냥 선심쓰듯 주는데...상호 주의에 입각해야공평하거늘 자국민은 얻어터지고다니는데도 찍소리못하는
우리네 정치권이 안타까우이....
필리핀 가정부 살인사건 범인 몰린 조광현씨 보석
해외 자국민 부당 대우 받아도 정부, 개인사건에는 개입 안해
외교부 "온두라스 한지수씨는 국민 관심 고려… 특이한 경우"
8 일 한 명의 한국인이 타지(他地)에서 구치소 문을 열고 나왔다. 이름은 조광현(35·사진). 2005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발생한 '필리핀 가정부 총격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뒤 미결수(未決囚) 신분으로 마닐라 구치소에 약 5년간 있었다. 조광현은 처음부터 자신은 필리핀 가정부를 살인하지도 않고, 물건을 훔치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영어가 서툰 그의 말을 귀담아들으려는 사람은 없었다. 조광현의 고용주였던 진모씨가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고, 조광현과 비슷한 차림새의 사람을 범행 현장에서 목격했다는 사람도 나타났다.
그런 그가 지난 8일 보석금 60만 페소(약 1550만원)를 내고 석방됐다. 필리핀에서 강도·살인 용의자가 보석금을 내고 석방된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보 석금을 대신 내주는 등 석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구정서(33·필리핀 회사원)씨는 20일 기자와 서울에서 만나 "검찰이 범행을 입증할 만한 증거자료를 내놓지 못했다"고 말했다. 범행에 사용된 총도 찾지 못했고, 현장에서 발견됐다던 총알도 '발사된 적 없는 총알'로 밝혀졌다. 경찰이 '조광현의 강도·살인의 증거'라며 보관 중이던 진씨의 귀금속도 재판 기간 중 쥐도 새도 모르게 분실됐다. 구씨는 "조광현이 구치소에 있는 동안 고용주 진씨는 사업이 망해 2006년 야반도주(夜半逃走)해서 한국으로 돌아갔다. 조광현이 필리핀에 와서 진씨에게 8000만원을 투자했는데 결국 그 돈을 받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18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조광현은 "감옥에서 동물 같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국가가 도와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 11월 25일 처음 체포됐을 때를 기억한다. "공항에서 경찰에게 붙잡혀 경찰서로 간 다음, 한 건물로 옮겨져 권총 손잡이와 길이 1m의 각목으로 맞았다. 얼굴은 멍들고 피투성이가 됐다. 그날 경찰서 서장실에서 한국 대사관에서 왔다는 영사를 만났다. 내 얼굴을 보더니 '얘네한테 맞았냐?'고 물었다. '얼굴 보면 모르냐'고 답했더니 '알겠다'라고 대답하고 돌아갔다. 그 뒤로 아무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대사관에서는 1년에 두 번, 구정과 추석 때 면회를 하고 생필품을 주거나 어려운 점을 물었다. 그러나 바뀌는 것은 없었다. 조광현은 "국가에서 재판에 관여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자국민이 부당하게 폭행을 당하지 않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 재외국민보호과 여창훈 서기관은 처음엔 "필리핀에서 특별한 사항이 보고되지 않았다"고 하다 "주필리핀 대사관에서 보내온 전문을 보면 경찰영사가 조광현씨를 11차례 면담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애로사항이 없다'고만 적혀 있다"고 말했다. 즉, 조광현이 필리핀 경찰에게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을 봤다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조광현이 만났다는 당시 경찰영사 박모(현재 국내 경찰 근무)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때 서장실에서 조씨를 만났지만 외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뒤로 한 번 더 면회를 갔는데 오히려 조광현이 면회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외교부가 살인 혐의로 온두라스에서 가택연금 중이던 한지수(27) 사건에 긴급대응팀을 보낸 것과 비교하면 대응방식에서 큰 차이가 느껴진다.
외 교통상부는 "한지수 사건이 특이한 경우일 뿐 원래는 개인 사건에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양제훈 서기관은 "개인사건에 국가가 지원한 사례는 유례가 없고, 한지수 사건의 경우 '국민 관심 때문에 (긴급대응팀을) 보낸 것 아니냐'는 말을 들어도 솔직히 할 말은 없다"고 답했다. 양 서기관은 또 "피해자의 국가인 네덜란드 정부가 나서려는 움직임이 있어서 대응 차원에서 개입한 것도 있다"고 밝혔다. 한국외대 서경교 교수(정치외교)는 "법적인 판단은 당연히 해당 국가 재판부가 하는 것이지만, 정부는 자국민이 해외에서 공정하게 재판을 받도록 노력해야 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보호해야 할 책임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조광현은 아직 재판이 끝나지 않아 필리핀에 머물러 있다. 내년 1월 초 최종 선고가 내려지는데 "무죄 판결을 받으면 한국으로 바로 돌아와 터를 잡겠다"고 했다. 필리핀인 아내(사실혼관계)와 아들을 데려와 함께 살 생각이다.
조광현 사건은?
조 광현은 1997년 프랑스 외인부대에 들어갔다가 2005년 중사로 전역했다. 한국에 돌아와 잠시 시간을 보내고, 2005년 8월 필리핀에 있는 한인 카지노 사장의 보디가드로 고용됐다. 3개월 후인, 11월 25일 새벽 5시쯤 사장 집에서 일하던 필리핀 가정부가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그는 용의자로 지목됐다. 그 후 4년10개월간 마닐라 구치소에서 미결수 신분으로 50차례 이상 재판을 받았고 지난 8일 보석금을 내고 나왔다. 내년 1월 27일 마지막 재판을 앞두고 있는 그는, 그전까지 필리핀 검찰이 추가증거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무죄 선고를 받게 된다
필리핀경우 외국인에게 시민권절대없습니다. 자국민과 결혼한 경우에도 시민권 이라는건 없습니다
근데 뭐말라비틀어졌다고 필리핀 이민자에게 시민권 남발하는지.... 대가리에 오물만가득찬개들이 마치제것인냥 선심쓰듯 주는데...상호 주의에 입각해야공평하거늘 자국민은 얻어터지고다니는데도 찍소리못하는
우리네 정치권이 안타까우이....
피드 구독하기:
글 (Atom)
